山夕詠井中月
이규보(李奎報)
山僧貪月色
幷汲一甁中
到寺方應覺
甁傾月亦空
스님은 달빛이 탐이 나서
물과 함께 병 속에 길렀지
절에 이르면 깨달으리
병을 기울여도 달이 없다는 걸
이규보(李奎報)
1168(고려 의종22) ~ 1241(고려 고종28)
자는 춘경. 호는 백운거사, 삼혹호 선생. 시호는 문순.
1168년 이윤수의 아들로 태어난 이규보는 9세 때부터 중국 고전을
두루 읽기 시작하였고, 글재주가 남다르게 뛰어나 신동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시를 잘 지어 천재라고 불렸던 이규보는 15세 때 과거에 응시
했으나 실패하고, 19세 때 다시 시험을 보았으나 떨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이규보가 자라면서 술과 시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딱딱한 과거 시험에 맞는 문장을 익히는데 게을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규보는 22세가 되어서 비로소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했어도 바로 관직에 나아가지는 못했다.
24세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이규보는 개경의 천마산에
들어가 시와 글을 지으며 지냈다. 이때 '백운거사'라는 호를 얻었다.
이후 개경으로 돌아온 이규보는 <구삼국사>를 구해 읽고
난 뒤 우리 나라 최초의 서사시로 일컫는 <동명왕편>을 썼다.
<동명왕편>은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주몽)의 탄생에서
부터 건국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한 시이다.
동명왕의 이야기는 이후 몽골의 침략으로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민족 정신을 불러일으켰다.
<동명왕편>은 오늘날 <삼국유사>, <제왕운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신화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10여 년간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이규보는
32세 때 비로소 관직에 나갈 수 있었다. 당시 고려는 무신들이 난리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그 무렵 최고의 권력을 지고 있던 무신 최충헌은
잔치를 열고 선비들을 불러 시를 짓게 했는데, 여기서 이규보는 최충헌에게
그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비로소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이규보는 직한림이라는 벼슬을 시작으로 우사간 등
여러 벼슬을 거쳤다.
최충헌의 뒤를 이은 최이는 이규보의 문장 능력을 높이 평가
하여 이규보에게 외교 문서를 작성하게 하고 팔만대장경의 제작에
참여시키는 등 중요한 일을 맡겼다.
이규보는 높은 벼슬과 명예를 모두 얻었지만 청렴한 생활로
가난을 면치 못했다. 이규보는 70세에 벼슬에서 물러나
74세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호탕하고 활달한 이규보의 시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는 즉흥시는 대단히 유명하였다.
시와 술 그리고 거문고를 좋아한 이규보는 평생 시와 문장을 통해 이름
을 날리고 높은 벼슬길에 나아갔다. 최이가 발간한 이규보의 문집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규보가 지은 책으로는 <동명왕편>이 실려 있는 <동국이상국집>,
<백운소설>, <국선생전> 등이 있다.
시 ·거문고 ·술을 좋아하여 삼촉호(술과. 시와 거문고를 좋아해서
삼촉호라했고 또한 茶를 굉장히 좋아했다)선생이라고 불렀으며,
또한 최충헌 최우 등 최씨무신정권집권자들의 각별한 지우를 얻었던
탓으로 '권신의 압객이란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문신으로서 기개가
있고 성격이 강직 · 분방하여 조정에서는 인중룡이란 평이 있었다.
관인으로서의 생애 전반기에는 관운이 그리 신통치 않았으나,
일단 관도에 나아가나 후에는 문한(文翰)에 대한 깊은 소양과 탁월한
문장능력으로 벼슬이 누진 되어 비교적 순탁한 생애를 보냈다.
당시 고려인들 사이에서는 글 한 수에 벼슬 하나씩을 더해갈 정도로
기위한 문재로서 관운을 타고났다고 평했다 한다. 만년에 불교에 귀의,
당대의 명승 · 고승들과 선시로서 교유하기도 했으며,
차(茶)에 대한 5편을 남길 정도로 다도(茶道)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는 (동국이상국집) 이 있으며, 시로는 (동명왕편) (천마산시)
(막중서희 (고시십팔운 ) (초입한림시) (공작) (재입옥당시)
(초배정언시) 등이 있다. 문(文)으로 는 묘청기 (대장군각판군신기고문)
등이 있으며, 소설작품으로는 (백운소설) (국선생전) 등이 유명하다.
묘소는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에 있으며 묘갈은 1408년(태종 8)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묘는 도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漢詩·書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견 (安堅)의夢遊桃源圖 (0) | 2018.02.12 |
---|---|
閑山島夜吟(한산도야음) (0) | 2018.02.12 |
杜鵑(두견화) (0) | 2018.02.12 |
참된 부처는 평안한 가정 안에 있다 (0) | 2018.02.12 |
조선시대 명기들의 사랑과 시 (0) | 2018.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