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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子胎室이 있는 胎峰으로 오르는 길
앞쪽열은 君 (서자(庶子)의 태실 뒷쪽열은 大君 (적자(嫡子)의 태실
世祖加封碑 1462년 (세조8년) 예조판서 홍윤성이 撰하여 세운 비
금성대군태실
조선시대 태실수호사찰이었던 선석사
세종대왕 왕자태실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胎峰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로서, 앞열은 11기, 뒷열은 8기로 되어 있다.
태실 앞에는 각각 왕자의 태실비가 세워져 있는데, 대부분 세종 20년(1438)~세종 24년(1442)
사이에 만들어진 19기의 태실이다.
1977년 12월, 이곳을 보수,정비하면서 금성대군, 화의군, 단종 등의 태실로 추정되는 자리에서
토기, 태호, 분청인화문 대접, 분청상감 연화문 뚜껑 1식과, 명기가 있는 지석 2점 등이 출토되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 경주박물관, 경북대학교 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
태봉에서 2~300m 거리에 조선시대 태실을 수호하던 사찰인 고찰 선석사가 있다.
현 胎峰은 산의 맥을 이어오지않고 서진산의 배산이 소쿠리처럼 전방위만 확트인 평원에 태봉이
복발처럼 나즈막하게 솟은 길지이다.지인들은 자궁지.연씨방지. 복발지 등으로 !!!!!!!
안평대군.금성대군. 화의군.한남군.영풍군 의 중석과 개석은 없고 기단석만이 있는데
이는 세조 3년 아래로 굴러 흩어진것을 1977년 복원한 것이다.
태는 태아에게 생명을 부여한 근원이므로 매우 중요시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자녀가 태어나면 길지(吉地)를 택하여 안장하고 태실을 만들었다.
또 왕위에 등극하면 가봉(加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