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화(世界一花) / 만공 스님 세계 일화(世界一花) / 만공 스님 세계는 한 송이 꽃.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산천초목이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 어리석은 자들은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인 줄을 모르고 있어. 그래서 나와 너를 구분하고, 내 것과 네 것을 분별하고, 적.. 법문·칼럼 2018.02.11
염불은 장애가 없다 - 정목 스님 염불은 장애가 없다 - 정목 스님 염불은 번뇌와 죄악이 깊고 무거움을 묻지 않는다. 스스로 번뇌를 소멸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염불을 실천하는데는 계정혜(戒定慧)의 장애가 없다. 이미 지은 악업과 지관(止觀)이라는 깨달음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법문·칼럼 2018.02.11
산사의 새벽 / 도량석(여명) 外 6선 산사의 새벽 / 도량석(여명) 外 6선 01 도량석(여명) 02 아침종송 03 명고타종(일출) 04 오분향례 05 발원문 06 반야심경 07 천수경 법문·칼럼 2018.02.10
아침에 듣는 명상 음악 아침에 듣는 명상 음악 01. 꽃잎 02. 서쪽하늘 03. 매화 꽃 04. 그해 봄 05. 돛단배 06. 가을 이야기 07. 그믐날 밤 08. 고향이야기 09. 선재동자 10. 선 법문·칼럼 2018.02.10
나의 행복도 불행도 내 스스로가 짓는 것. 나의 행복도 불행도 내 스스로가 짓는 것.나의 행복도 나의 불행도 모두 내 스스로가 짓는 것. 결코 남의 탓이 아니다. 나보다 남을 위하는 일로 복을 짓고 겸손한 마음으로 덕을 쌓아라.모든 죄악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 늘 참고 적은 것으로 만족하라.웃는 얼굴, 부드럽고 진실 되는 말로 남을 대하고 모든 일은 순리에 따르라.나의 바른 삶이 나라 위한 길임을 깊이 새길 것이며, 나를 아끼듯 부모를 섬겨라.웃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할 것이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정을 베풀어라.내가 지은 모든 선악의 결과는 반듯이 내가 받게 되는 것.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살아라.오늘 해야 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확실히 해두는 것이야 말로 좋은 하루를 사는 길이다. 추한 말을 멀리 여의.. 법문·칼럼 2018.02.10
자기(自己)를 바로 봅시다 /성철 스님 자기(自己)를 바로 봅시다 /성철 스님 자기(自己)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 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설.. 법문·칼럼 2018.02.10
견성성불(見性成佛) 견성성불(見性成佛) 육조혜능은 말하기를 “나의 이 법문(法門)은 원래부터 무념(無念)을 종(宗)으로 삼고, 무상(無相)을 체(體)로 삼고, 무주(無住)를 본(本)으로 삼는다. 무상(無相)은 모습 속에서 모습을 벗어나는 것이다. 무념(無念)은 생각 속에서 생각이 없는 것이다. 무주(無住)는 사.. 법문·칼럼 2018.02.10
初祖에서 六祖까지 初祖에서 六祖까지 초조. 달마스님 ..면벽 굴에 가니 .. 本來面目..... 혼자 겨우 살수 있는 토굴..이런 글이 쓰여 있드라. 무슨 ..뜻이며 - 무슨 말일까.. 이조. 혜가 스님 정진 하신 곳은 .. 절벽 계단 이 만개.. 죽기로 가야했는데.. .. 不二心信.... 왜 인적이 드물고 사람이 오지 못하는 곳에 .. 법문·칼럼 2018.02.10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의미의 상선약수는 자연과 인생의 순리를 말해준다. - 물은 모든 것들에게 이로움을 준다. - 물은 앞서 가려 서로 다투지 않는다.(流水不爭先) - 물은 낮은 곳으로.. 법문·칼럼 2018.02.09
모르거든 그저 죽기로 참구하라/혜암스님 비슬산 용련사 모르거든 그저 죽기로 참구하라/혜암스님 시자(侍者)가 여쭙되, “무엇이 중노릇 잘하는 것입니까.” “공(功)들임이 깨침이요, 깨침이 곧 공부(工夫)며 공부가 곧 중노릇이니라. ” 때는 갑자년 시적(示寂)을 코앞에 두신 해암스님이 다음과 같이 설했다. 네가 공부를 물으.. 법문·칼럼 2018.02.09